- "재생에너지의 자유로운 거래를 전제로, 그 과정에서 필요한 조건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인더스트리뉴스 정한교 기자] “영향력 있는 기업들이 RE100을 선언함으로써 국가나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과 정책에 신호(signal)를 보내 사회가 탄소 없는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하는 것. 그것이 RE100 참여 선언이 가지는 메시지”
기업재생에너지재단 진우삼 상임이사는 국내 시장에 RE100을 알린 선구자적 인물이다.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의 학회장직을 수행하던 지난 2019년, 한국RE100위원회를 조직해 영국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한국에 RE100을 도입했다. 이후 기업의 RE100 가입, RE100 정책활동, 그리고 RE100 이행을 위한 재생에너지 수요와 공급 매칭 플랫폼인 ‘한국 재생에너지 매칭 포럼’ 창립 등 기업의 재생에너지 접근성 향상을 위해 전념해왔다.
진 이사가 국내에 RE100을 전파한 지 5년여가 지났다. RE100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낯선 단어가 아니다. 누구나 그 뜻을 알고 있고, 왜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을 선언하는지 공감하고 있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여전히 혼선을 겪고 있다. 모두가 공감하는 RE100이지만, 우리 사회가 RE100 이행에 있어 혼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진 이사는 “우리나라는 에너지가 정치화돼 있어 기업들이 RE100의 근간인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며, “기업의 자발적 이니셔티브인 RE100은 기업의 판단과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2019년과 비교하면, 직접 PPA 제도가 도입되는 등 RE100의 기반을 쌓는 다양한 성과가 있었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당시와 비교해 공급은 줄어들고, 가격은 올랐다.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공급이 줄어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작금의 혼란을 끝내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기업들이 ‘기후리더십’을 가지고, 시장과 정책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후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전세계 산업은 높아진 기후 무역장벽을 넘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이에 반해 여전히 국내 기업들의 탄소 감축을 위한 노력은 미진하다. 이에 기업재생에너지재단 진우삼 상임이사를 만나 국내 기업들의 RE100을 진단하고, 성공적인 탄소 감축을 이끌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무엇인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RE100, 왜 해야 하는가?
기후 문제는 에너지 사용에서 출발한다. 일반 가정에서 “여름철 냉방 온도를 1도 높이고, 겨울철 난방 온도를 1도 낮추자”와 같은 캠페인을 진행하는데, 실제로 이러한 캠페인이 에너지 사용에 얼만큼 영향을 미칠까? 물론 에너지 소비자의 경각심을 유발하던가 관심을 촉발하는 훌륭한 촉매제로는 작용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촉매제로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에너지는 기업에서 사용된다. 전체 사용량의 4분의 3 정도가 기업에서 사용되는 것이다. 결국, 탄소중립이라는 궁극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기업에서의 에너지 사용을 절감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 RE100은 여기서 출발한다. 지구의 미래,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기업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캠페인이다.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의 학회장을 엮임 중이던 지난 2019년, 더 클라밋 그룹(The Climate Group)과 RE100 파트너십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RE100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RE100은 영향력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시작한 캠페인이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기업들이 에너지 전환을 통한 탄소 감축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이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후 국내 RE100 포럼 개최, 기업 간담회 개최, 한국 RE100위원회 조직 등 한국에서도 RE100 기업을 탄생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왔다.
기업의 RE100 이행이 중요한 이유는?
RE100은 강제성을 가진 규제가 아니다. 100% 기업의 자율 의지에 맡긴 캠페인이다. 기업이 RE100을 이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메시지’이다. 일반적인 캠페인은 회원 가입의 허들이 그리 높지 않다. 이에 반해 RE100 캠페인에 가입하고자 하는 회원들은 상당히 높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기업 부문(business sector)에서 리더십을 가진 기업이 그 대상이다.
이처럼 회원가입 대상을 제한한 이유는 그들이 지닌 영향력을 바탕으로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시그널을 보내기 위해서다. 일례로, 일본기업 소니는 지난 2020년 2030년까지 일본에서 고객들이 요구하는 RE100 달성 제품을 생산할 수 없으면, 일본 밖으로 공장을 옮길 수밖에 없다고 일본 정부를 압박한 바 있다. 소니가 정책 입안자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RE100이라는 매개체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즉, 국가나 산업에 영향력이 큰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환을 선언함으로써 시장과 정책에 시그널을 보내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더욱 가속하는 것. 그 기폭제가 바로 RE100이다. 그동안 ‘RE100은 무엇인가?’에만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제는 RE100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RE100이 국내 기업들의 여건과는 맞지 않는, 오히려 국내 기업들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의견도 있다.
RE100은 전세계가 공통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RE100은 기업의 이니셔티브(initiative)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수익성 측면에서 기업의 성장을 이끌기는 어렵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RE100을 바라본다면 분명히 기업의 이익을 위한 행위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의 책임 소지에서 기업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기업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전적·진취적으로 부딪힌다면, 새로운 스테이지 또는 문법 등과 같은 후발주자와의 분명한 차별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결국 RE100은 기업의 생존전략이자 리스크를 해소하고 이익을 가져오는 경영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내고, 나아가 혜택(benefit) 확대에 있어 RE100은 새로운 스테이지를 만들어감으로써 후발주자들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패스포트(passport)와 같다고 생각한다.
해외 기업들이 RE100 이행에 적극적인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나?
RE100은 ‘CEO business’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에 속한 임직원들은 기업의 매출, 단기순이익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기업의 오너(CEO) 입장은 다르다. 물론, 당장의 기업 이익도 중요하지만, 이들은 5년 후나 10년 후 조금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집중할 수 있다. 마켓 셰어(market share) 확대, 비즈니스 리더십 유지, 나아가 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방안 등에 관심을 가지는 자리이다.
아마존(Amazon), 애플(Apple) 등 RE100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이들 오너 선에서 RE100을 이해하고 명확한 철학을 이행하고 있다. 단기적인 수익성 측면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RE100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실무진 선에서 RE100을 검토하고 이행한다면, RE100 이행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이 RE100 이행에 애를 먹는 것도 여기서 기인한다. 실무진 선에서 RE100을 검토한다면, 얻을 수 있는 수익과 소모되는 비용 등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은 RE100을 담당하는 조직의 레벨이 상당히 낮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RE100은 이행하는 것보다 기업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의 최고 책임자가 RE100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비전과 철학을 보여줘야 한다.
기업들은 국내 환경 여건이 RE100 이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라고 말한다.
국내 기업들이 RE100 이행에 애를 먹는 또 다른 문제는 에너지의 정치화다. 어떠한 정치적 이념을 통해 에너지를 바라보기보다는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관점에서 에너지를 바라보고, 정책 등 환경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앞서 말했던 일본의 소니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영향력을 가진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격거리 규제를 철폐해 주세요”, “송·배전반 확대해 주세요” 등등 현재 국내의 에너지 이슈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제조시설을 한국에서 운영 못 합니다”, “해외로 이전하겠습니다” 등등 기업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국내의 상황은 자칫 목소리를 낸 기업이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봐 극도로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들이 RE100에서 리더십을 보여주며, 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과제로 남아있다.
부족한 재생에너지 공급량 등 국내 기업의 성공적인 RE100 이행을 위해 어떠한 정책적·제도적 노력이 필요한가?
수요는 충분한데, 공급이 부족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거래’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메커니즘(mechanism)에 따라 자유롭게 놔두면 발전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래는 창의력과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발전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근본적으로 재생에너지는 무엇인가를 허용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자유로운 거래를 전제로 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조건들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제도는 규제로 시작해 그 과정에서 필요한 조건들을 허용해주다 보니 전체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누구나 사고팔 수 있는,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에 대한 규제를 진행하는 것이 재생에너지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또한, RE100은 기업이 하는 캠페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부나 지자체가 RE100을 소개하고 방향을 정해주는 모습이다. 정부의 역할은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리며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고, 지자체 등 지방 정부는 지역 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직접 RE100에 뛰어드는 일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부가 나서서 RE100을 하는 곳은 없다.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은 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와 올바른 제도 확립, 딱 두 가지다. 나머지는 기업의 역할이다.
국내 여건상 RE100 이행은 어렵기 때문에 CF100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진심으로 CF100이 잘 되길 바라고, 잘 됐으면 좋겠다. 다만, 이는 기업이 선택할 문제지 제3자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다. RE100이나 CF100이나 이러한 이니셔티브는 자발적 캠페인이다. 자발적 의사에 따른 캠페인이라면, 선택은 캠페인에 참여하는 기업의 몫이지 외부에서 자꾸 논란을 만들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넷제로로 가는데 어떤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고객 평판에 더욱 효과적인지 기업이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다. 외부에서 자꾸 논란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재생에너지재단의 향후 계획 및 목표는?
재단은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RE100 참여를 유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자발적 재생에너지 수요를 창출했다. 이 수요를 바탕으로 구매자(buyer) 영향력을 한 곳으로 결집시킴으로써 시장과 정책에 시그널을 보내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는 것이 목표이다.
대표적으로 구매자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논의되는 해상풍력발전 특별법이 있다. 따라서 재단은 오는 10월 31일 제주 라마다호텔에서 개최되는 ‘한국 재생에너지 매칭포럼’에서 ‘해상풍력 기업 조달(Corporate Sourcing)을 위한 정책 개선 방향’이라는 주제로 특별 세션을 개최한다. 국내 기업들이 해상풍력을 통해 RE100을 이행할 수 있도록 생산단가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정책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다.